'윤 과장' 시킨대로 했는데…3차례 전화 후 32억 사기범 됐다
'카드 개설되었습니다. 명의도용 염려 시 문의 주세요.' '방금 수신한 문자 메시지는 해외에서 발송되었습니다.'
서울에서 고시원을 운영하는 김 모(가명·28)씨는 지난 10일 오전 평소 이용하던 카드사로부터 문자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명의로 카드를 만들어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스쳤습니다.
김 씨는 곧장 문자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이어 친절한 남성의 안내 음성이 나왔습니다.
자신을 ○○은행의 이만재 대리라고 소개한 남성에게 '카드를 발급한 적이 없다'는 사정을 설명하자 그는 "신용카드가 해외에서 발급됐다는 건 대부분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상태일 것"이라며 "김 씨 이름으로 발급된 또 다른 카드나 통장이 있는지 살펴주겠다"고 다급히 이야기했습니다.
'딸깍, 딸깍'. 사무용 키보드와 마우스 소리가 잠깐의 침묵을 메웠습니다.
곧이어 남성은 "이미 개설된 또 다른 통장이 있는데, 이미 1년 동안 사용한 내용이 있다. 그걸 몰랐냐"며 "피해를 볼 수 있으니 자산 보호가 가능하도록 돕겠다"고 말했습니다.
깜짝 놀란 김 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본인 명의로 여러 거래가 오갔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습니다.
남성은 "자산 보호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다"며 "서비스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개인정보를 보호한다는 서명을 해야 하는데 그 절차가 까다로워 원격 조정 애플리케이션(앱)을 먼저 깔면 원격으로 도와주겠다"고 안내했습니다.
그러면서 김 씨가 전화를 건 개인용 아이폰은 원격 조정이 어려우니 업무용 안드로이드 휴대전화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했습니다.
남성은 금융감독원에 전화하면 자산 보호 신청을 할 수 있다고 안내하며 문의 사항이 있을 경우 ○○은행에서 자신을 찾으면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남성의 친절한 모습에 김 씨는 한 편으로 마음이 놓였습니다.
금융감독원에 전화했더니 이번엔 한 여성이 받았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여성은 자산 보호 신청을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몇 분 후 여성은 "김 씨 건은 보안 사항으로 묶여 있어 제 권한으로는 조회가 안 된다"며 "대포통장 같은 걸로 수사가 들어가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후 "사건을 조회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대검찰청을 치고 사건번호 조회 창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한 뒤 동의 버튼을 누르면 된다"고 했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김 씨는 그저 여성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여성도 원격 앱으로 서류를 함께 살펴봐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사건 급수가 특급이다. 10억 이상 규모로 피해가 있을 때 이렇게 나온다. 김 씨는 32억 정도 되는 큰 사건에 연루된 것 같다"며 "연관된 사람이 70명 정도라 김 씨에 대한 구속영장까지 나왔는데, 수사 당시에 김 씨는 범행에 주도적인 사람은 아니라서 아직 우편으로 안 보낸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여성은 단순한 사기가 아니라 금융권 종사자까지 엮인 사건이라며 심각해 했습니다.
그러면서 대검찰청에 전화해 담당 검사에게 명의를 도용당했다는 사실을 알리라고 했습니다.
이런 일을 처음 겪는 데다 수사 관련 지식이 전혀 없던 김 씨는 여성의 설명대로 대처하려고 했습니다.
"대검찰청에 전화를 걸면 민원실에서 받을 거예요. 그러면 제가 알려드린 사건 번호를 말하고, 담당 검사 연결해 달라고 하세요. 핸드폰은 이미 해킹됐기 때문에 그 핸드폰으로 하면 사기범들이 김 씨가 대검찰청에 연락한 걸 알고 통장에서 돈을 다 빼갈 수도 있으니까 꼭 안드로이드 핸드폰으로 하세요. 검사가 '이 사건을 어떻게 알고 있냐'고 물으면 제가 알려줬다고 하세요. 저는 금융감독원의 윤재희 보안업무과장이에요."
윤재희 과장이 예상한 대로 검사는 김 씨에게 "가해자가 왜 검사한테 전화하느냐"며 "이 사건을 6개월 동안 비밀리에 수사하고 있다. 당신이 사건을 알게 된 경위가 의심스럽다"고 쏘아붙였습니다.
지금껏 있던 일을 설명할 때마다 "변명이 길다"며 "72시간 동안 수사를 받아야 하니 갈아입을 속옷과 세면도구, 신분증, 통장을 들고 오후 4시까지 대검찰청에 와야 한다"고 몰아세웠습니다.
검사는 "이 사건의 보안등급이 최상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발설하면 안 되며 발설할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불안한 모습으로 개인용품을 챙기던 김 씨의 모습을 본 가족들이 스미싱을 의심하고 경찰서에 전화하면서 다행히 상황이 종결됐습니다.
경찰은 김 씨에게 "카드발급 문자를 빌미로 한 사기는 신종 스미싱"이라며 "검찰에서는 우편 등 서면으로 통지하며 전화로 당사자를 부르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씨는 오늘(11일) 언론 통화에서 "돌이켜보면 스미싱이라고 의심할 만한 순간은 많았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류도 어딘가 엉성했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면 판단이 흐려질 수밖에 없도록 피해자를 몰아붙인다"며 "모두 한통속으로 속인 것이라고 생각하니 허망하지만, 실제 피해로 이어지지 않아 천만다행"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스미싱 관련 피해는 갈수록 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법도 날로 교활해지고 있습니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따르면 지난 1∼5월 KISA에 신고된 스미싱 메시지는 69만 2천여 건으로, 지난해 1∼5월(9만 4천여 건) 대비 약 7.3배로 늘었습니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과 연락처 등 탈취하는 방식에서 해커가 휴대전화를 원격 제어하는 등 범행 방식도 진화하고 있습니다.
출처 :
https://n.news.naver.com/article/055/0001171108?ntype=RAN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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